구출소식

"어머니, 왜 저를 버리셨나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27 14:38
조회
100
 

 

"어머니, 왜 저를 버리셨나요?"







지난주 한 소녀가 무사히 안전국에 입국했다는 소식 전해드립니다.

1998년 10월 량강도 혜산시에서 태어난 방00씨가 열 살 되던 해였습니다. 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언 땅을 뚜지며 약초를 캐고, 여름에는 되거래 장사를 하던 어머니였습니다. 집 나간 어머니를 탓하던아버지는 결국 다른 여자를 만나 재혼을 했고, 방씨는 의붓어머니 손에서 눈칫밥을 얻어먹으려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설움을 이기지 못해 큰어머니 집으로 도망쳤고, 거기서 장마당이며 농사일이며 쉼 없이 도우며 살았습니다.하지만2010년 화폐개혁이 시작되자 어렵게 모아 놓은 손톱만한 밑천마저 종이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고리대를얻어 장사를 다시 시작했지만 눈두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를 갚아낼 능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어머니는 함께 강을 건너자고 제안했고 그녀는순순히 그 말에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018년 8월, 수위가 높아진 틈을 타 두 사람은 압록강을 넘었고, 나우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땅을 곧 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미안해”

1967년 4월 량강도 보천군에서 태어난 조00씨는 농장에서 만난 한 남성과결혼했습니다. 그런데협동농장은 분배를 잘 주지 않아 항상 배고픔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몇 년이 지나니 자식도 셋이나 생겼고, 대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압록강에 인접한 지방이었기에 중국에 대한 소문이많이 퍼졌고 “중국에서 한 달만 벌면 북한에서 일년은 먹고 산다”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그녀는 생계를이어나가기 위해 가족들 몰래 2012년 7월 말 중국으로넘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바위에 부딪힌 파도같이 산산이 부서졌고 그녀는 인신매매를 당했습니다. 그녀를 사간 한족 남편은 농촌과 탄광을 오가며 일한 품삯으로 겨우 식량을 구입해 먹고 살기 급급했습니다.

북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부모구실도 못했다는 죄책감에 하루하루 눈물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그녀는 무사히 한국에 도착하게 된다면하루 빨리 국적을 회복하고 북에 있는 가족들을 데려와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 꿈이 꼭 이뤄질 수있도록 나우가 함께하겠습니다.

"언 땅을 파지 않아도 되요"

2002년 겨울 매섭게 추운 량강도에서 태어난 남00양은 6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식을 먹여살려야 했기에 언 땅을 뚜지며 감자이삭을 주워야 했습니다. 2013년 여름, 어느날 소학교에 갔다가 다녀오니 집에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루, 이틀 손꼽아 기다렸지만,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이모네 집을 찾아갔고그 이후부터 공부대신 호미와 낫을 들고 일해야 했고, 겨울에는 언 땅을 뚜지며 감자이삭을 주워야 했습니다. 때로는 이모의 일손을 도와 물도 깃고 땔감도 해야 했는데 외소한 체구에 너무도 힘에 부치는 일상이었습니다.

이모 손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살던 중, 그녀는 지난 8월 초에 저는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압록강에 건너니 바로 인신매매들의손에 넘겨졌습니다. 그녀는 간신히 도망을 쳤지만, 현재 갈수 있는 곳도 없고 공안에 잡혀 북송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녀는 십대초반부터 보호자가 없이 인생을 결정해야 했고, 한국에가면 국적을 회복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국에 가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가면가장 좋은 것은 ‘언 땅을 파서 먹을 것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에는 동일한 나이대를 사는 소녀들이 있습니다. 이소녀도 대한민국의 아이들처럼, 먹을 걱정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꿈을 키우는데 나우도 함께 합니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자입니다.

후원자님들의참여로 북한인권단체 NAUH(나우)는 현재까지 302명의 탈북자를 자유대한민국으로 구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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