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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죽고 사는 세상”

NAUH 2018-12-17 15:14:03 조회수 855


 

함경북도 회령시에서 태어난 김00씨는 2014년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송 되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에 다시 돌아갔을 때 부모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김씨가 북송되자 북한 보위원들은 그녀의 부모를 찾아와 딸을 풀어주겠다는 구실로 수 차례 금전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사기였는데요.

 

이에 너무 시달린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생명을 갖고 장난치는 보위원들에게 반항하며 욕을 했고, 그 후로 수용소에 끌려가고 만 것입니다. 2015년 봄, 김씨는 구류장에서 어렵게 도망쳐 다시 탈북했지만, 집도 없는 한족남자와 하루살이처럼 근근이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이웃은 신분이 없는 여자라며 김씨를 못살게 했고, 그런 상황을 그녀는 고스란히 참아내야만 했는데요.

 

허리가 아파 제대로 일도 할 수 없는 김씨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살 용기를 냈습니다. “80대 할머니도 가는 길, 본인도 갈 수 있다며 죽을 용기를 다해 대한민국 행을 선택한 그녀가 하루 빨리 자유의 땅에서 심리적, 육체적 건강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반드시 살아서 죽은 가족들의 한을 풀어 줄 겁니다

 

1980년 함경북도 회령의 시골에서 태어난 허00씨는 21남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교사였는데요. 북한에서는 교원은 먹고 살기 괜찮은 직업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사도 할 수 없다 보니 유난히 힘들게 살았다고 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유선암 진단을 받았고, 병원이라고 생긴 데가 있긴 했지만 창고 안에는 거미줄만 한가득인 한심한 상황이었죠.

 

결국 허씨는 어머니를 치료할 돈을 벌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는데요. 그 길로 열 여덟 살이나 많은 한족 남자에게 팔려갔습니다. 애타게 고향에 있는 가족들만 그리며 살던 중, 가족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녀의 남동생은 군입대 후 맹장이 터졌는데도 무리하게 일을 해야 하다 보니 복막염이 와서 죽었고, 어머니는 2년 전 벌써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잃고 자신의 인생마저 피폐해져 버린 인생이지만, 허씨는 죽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마지막 살 용기를 내어 봅니다. 그녀가 하루 빨리 자유의 땅 대한민국에 와서 사람의 정을 느끼며,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을 수 있기를 나우도 간절히 기원합니다.

 

 

 

내 부모가 태어난 자유의 땅에 묻히고 싶수다

 

1945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00씨는 평양봉수중학교를 졸업하고 순천군에 있는 농기계기술학교를 나왔습니다. 또 다른 세상에 대한 궁금함이 많았던 그는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농촌으로 추방돼 농장에서 일해야 했는데요. 몇 번의 탈북 시도로 아오지 탄광에 끌려가 1년간 석탄을 캔 적도, 평안남도에 있는 중산군 노동교화소에서 3년간 강제노동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2004, 네 번째 탈북을 시도한 그는 중국에서 삯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살았지만, 단속도 더 심해지고 72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더는 삶을 지탱하기가 어려워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고령의 나이에 어떻게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김씨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파도 들여다 봐 줄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죽고 싶지 않습니다. 말이 통하고 마음이 편한 땅, 내 부모가 태어난 고향에 묻히고 싶습니다.” 김씨 할아버지의 소원이 반드시 이뤄질 수 있도록 나우가 함께 응원합니다.

 

 

 

자신의 삶을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김씨의 소원

 

1980년대 중반, 량강도 혜산시에서 태어난 김00씨는 어머니와 여동생 3명이 한 가족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지자, 김씨와 동생들은 식량장사를 하며 근근이 버텼는데요. 어느 날 동생이 결혼해 아들을 낳았는데, 1년이 지나고 보니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아이였습니다.

 

중국에 가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김씨는 어머니와 조카의 치료비를 구하려고 2015년에 압록강을 건넜는데요. 그 길로 언어장애가 있는 한족 남자에게 팔려갔습니다. 그 남자는 그녀에게 전화기도 사주지 않고 감시만 하다 보니 북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3년 간 감옥 같은 집에서 외부출입도 못하며 살던 그녀는 이런 삶에 종지부를 찌기 위해 새벽에 몰래 그 집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한국에 오는 대로 돈을 벌어 어머니와 조카의 치료비를 댈 생각만 하는 김씨가 하루 속히 자신의 삶을 찾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굶주림 때문에 선택한 세 남매의 생이별

 

1970년 평안남도 은산군에서 태어난 강00씨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사리원에 있는 방직공장에 배치 받았습니다. 1994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가세는 더욱 기울었고, 강씨는 두 남동생을 혼자 먹여 살려야 했습니다. 먹고 살 길이 없어서 꽃제비를 치면서 구걸도 해 봤지만 자신의 힘으로 동생들을 먹여 살릴 길이 없었습니다.

 

결국 세 남매는 각자 헤어졌고, 그 길로 강씨는 탈북을 했습니다. 강을 건너기 바쁘게 7살이나 많은 지적 장애를 가진 한족 남자에게 팔려갔고, 매일 같이 폭행을 당하며 살았습니다. 슬하에 두 딸이 있었는데, 공안의 눈을 피하기 위해 두 아이를 데리고 항상 이사를 다니며 살아야 했습니다.

 

동네에서는 조선여성이라는 이유로 수모를 당해야 했고, 지은 죄도 없이 억울함을 말할 수도 없는 인생을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용기 있게 한국행에 올랐습니다. 강씨는 한국에 오는대로 국적을 회복하고 자리를 잡아 중국에 있는 딸들을 데려와서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 소박하고 당연한 꿈을 나우도 응원합니다.

 

 

 

“14년 간의 북송 위협에서 이젠 벗어나고 싶어요

 

1977년 가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난 김00씨는 어릴 적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단 둘이살았습니다. 학교를 마친 그녀는 생기령 도자기 공장에 배치 받아 일했는데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 수 없었던 것이죠.

 

그녀는 중국에 가면 돈을 쉽게 번다는 말을 듣고 2005년 탈북 했습니다. 그 길로 여덟 살 위인 한족 남자에게 팔려갔는데요. 시골에서 옥수수와 콩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았고, 그녀의 아들은 이제 13살입니다.

 

하지만 국적이 없어 돈을 벌 수 없는 상황에서 매월 500원이라는 학비를 댈 방법이 없습니다. 자식의 앞 길도 막을 수가 없어 결국 대한민국행을 선택한 김씨. 그녀는 14년간 북송의 위협에서 두려움에 떨며 살았던 인생을 이제라도 벗고 싶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강요당하는 사회

 

1986년 여름, 평안남도 덕천시에서 태어난 김00씨는 1998년에 어머니와 함께 탈북하다가 팔려간 후 지난 2016년에 북송되었습니다. 6개월 간 덕천시에 있는 노동단련대에서 보낸 그녀의 하루 일과는 새벽 4시부터 저녁 10시까지 무보수 노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로 모래채취와 김매기, 도로보수 등을 했는데, 노동의 대가로 얻어먹는 식량은 고작해야 몇 알의 삶은 옥수수였습니다. 먹지 못하고 일해야 하는 생지옥 같은 곳에서 사는 동안 그녀는 한 명의 아사자와 한 명의 음독 자살자를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매일같이 계속되는 지령원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난 김씨는 지난 9월 재탈북해 건강을 추스른 후 한국행에 올랐습니다. 그는 한국에 입국하면 국적을 회복하고 떳떳이 말하며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입니다.

 

북한인권단체 NAUH(나우)는 현재까지 373명의 탈북자분들을 한국에 모셔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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