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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생산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NAUH 2018-11-07 13:19:06 조회수 39

 

 

1992년 혜산에서 태어난 김00씨는 친언니가 학업을 포기하고 김씨를 뒷바라지 해준 덕분에 어렵사리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언니는 고철을 팔기 위해 얼음길을 건너다 구멍에 빠져 죽을뻔 한 적도 있었고, 콩배낭을 메고 가다 보안원에게 쫓겨 강내뿌리에 넘어져 얼굴에 흉터가 난 적도 있었지만, 동생을 공부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고생을 감내하며 살았습니다. 김씨는 울며불며 나 공부 안 해도 좋으니 언니 고생 그만해라고 애원도 해봤지만 언니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죠.

 

그러던 2009년 봄, 언니는 4.15 행사 구경을 가자며 그녀를 불러냈고 그 길로 압록강을 같이 건너게 됐습니다. 언니는 동생을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함께 탈북을 감행했지만, 이 두 사람은 강을 건너자마자 생이별 하며 각자 다른 집에 팔려가게 되었죠. 김씨를 사간 남편은 정신지체장애인이었는데, 그녀를 아이 낳는 도구로 여겼다고 합니다. 아이를 낳을 때 출혈이 심했는데도 수혈을 받지 못해 쓰러진 그녀에게 시댁이란 곳은 꾀병을 부린다며 발로 툭툭 찼다고 합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김씨는 중국에서 언니를 재회했고, 그녀 먼저 한국행을 선택하게 되었죠. 그녀는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되면 국적을 회복하고 컴퓨터를 배우고 싶다고 합니다. 서둘러 자리도 잡아 언니를 데려오고 싶다는 김씨의 꿈을 나우는 응원합니다.

 

 

 

아픈사람을 돌보고 싶어요

 

1983년 량강도 혜산시에서 태어난 박00씨는 학교를 마친 후 혜산의학대학을 6년간 다녔습니다. 그 후 산부인과에서 1년정도 실습생으로 있었지만 3000원의 로임은 쌀 1킬로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 심양에 가면 하루에 100위안은 번다는 소리를 듣고 2007년 여름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강을 건넌 그녀는 인신매매꾼들에 의해 팔려갔고, 10년간 감시 속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밖에 나간다고 해도 말이 통하지 않아 공안에 잡힐 수도 있었기에 죽은 듯이 살아야 했습니다. 박씨는 국적이 없는 설음, 감옥같은 삶을 벗어나고자 한국행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한국에 가면 국적을 회복하고, 감시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또한 의사공부를 마친 후 아픈 사람을 돌보고 싶어 합니다. 347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1990년 혜산에서 태어난 박00씨의 아버지는 2007년 파상풍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수매소집일을 하면서 음식장사를 하여 그녀를 졸업시켰습니다. 그 후 어머니의 노력으로 운수동원총국 답사소에서 5년간 일했지만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장사를 시작했지만 거꾸로 섰고,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기 위해 20169월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그녀는 바로 한족에게 팔려갔고, 사람취급을 받지 못해도 눈물을 삼키며 버티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한국행에 올랐습니다.

 

박씨는 국적이 있어야 자신도, 가정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한국에 가면 국적을 회복하고 요리사가 되어 돈을 벌어 북한에 가족을 데려오고 싶어합니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자입니다.

 

북한인권단체 NAUH(나우)는 후원자님들의 사랑으로 현재까지 349명의 탈북자를 한국으로 모셔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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