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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도 국적 없이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NAUH 2018-11-05 14:15:16 조회수 32

 

 

00씨는 1992년 여름, 무산군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중학교 6학년 때 학교를 갔다 오니 항상 계시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와 단둘이 살면서 학교도 마치고 공업품장사와 비료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지만, 외상으로 판 것도 돌려받지 못해 장사밑천을 몽땅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중국에 가면 돈을 잘 벌 수 있단 말에 2016년 가을 두만강을 건넜는데, 그녀도 결국 인신매매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시댁의 강요로 딸을 낳았지만 국적이 없는 엄마를 만난 죄로 갓난아이는 출생신고도 못한 채 살아가게 되었죠.

 

박씨는 한국에 오면 국적을 회복하고, 딸을 호적에 올리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요리를 배워 중국에 있는 어머니를 모셔와 대접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 소박한 꿈이 박씨에게 어서 빨리 이뤄지도록 함께하겠습니다.

 

 

 

저도 제 인생을 살 권리가 있을까요 

 

1993년 연사군에서 태어난 장00씨는 두부장사하시는 어머니의 노력으로 자랐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장사밑천을 사기당했고, 강제징수가 많은 학교공부를 더 이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땅에 미련을 버린 그녀의 어머니는 밥 먹는 걱정이 없다는 중국으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장씨는 20081월 두만강을 건넜지만, 어머니와 생이별을 당해야 했고 16세의 나이에 팔려가야 했습니다. 250만원에 마음에도 없는 12년 이상의 한족과 살아야 했던 그녀는 감시 속에 처하게 되었고, 동네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녀는 집 같은 감옥을 벗어나 당당하게 살기 위해 한국행을 택하였습니다. 장씨는 어려서부터 가사로 잔뼈가 굵은 삶에서 해방되어 국적을 회복하여 한국의 이십대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한국에 오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색시를 데려오고 싶어요

 

1993년 여름 혜산에서 태어난 우00씨는 두부장사하신 어머니의 뒷바라지로 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지난 2012년 봄, 어머니는 간복수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불행이 연속으로 아버지도 3년 후 간복수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독신으로 남겨진 그는 보천농장에서 잠깐 일하게 되었고, 식모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였다고 합니다. 1년 일한 분배가 감자 1리어카인데 가정이 몇 달 도 먹을 수 없는 양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모래장사를 하면서 가족을 부양하였습니다.

 

우씨는 고된 노동 끝에 건강악화로 드러눕게 되었고, 병명을 알아본 결과 담낭염이었습니다. 북한에서는 도저히 병을 고칠 수 없기에 지난 달 18일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그는 한국에 오면 국적을 회복하고 건강을 되찾은 후 돈을 벌어 색시를 데려오고 싶다고 말합니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자입니다.

 

북한인권단체 NAUH(나우)는 현재까지 346명의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모셔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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