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건설(주)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서브메뉴 바로가기

활동소식 Activities News

Sponsored by

후원 참여하기 후원 계좌안내

1:1문의

1:1 문의하기 찾아오시는길

구출이야기

Home > 활동소식 > 구출이야기

척박한 곳에 떨어진 씨앗

NAUH 2018-10-05 11:01:26 조회수 177

 

 

1984년 량강도 혜산시에서 태어난 최00씨는 한국에 오기 위해 여러 번 시도하였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녀는 3년 전 강을 건넜지만, 안도에서 잡혀 도문에 한 달 머무르다 북송되었다고합니다.

 

그 후 북한의 로동단련대에서 3개월간 강제노역과 사상검토를 받아야 했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최00씨는 지난 9월 초 다시 압록강을 건넜습니다. 급류에 휩쓸려 수백미터를 떠내려가기도 했지만, 다행이 중국에서 나우와연락되어 한국행에 올랐습니다.

 

수년 전부터 한국행을 꿈꾸던 그녀는 “단지척박한 곳에 잘 못 떨어진 씨앗”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출생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과연 북한을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우는 최00씨가 국적을 회복하고원하는 꿈을 이루길 소망합니다.

 


 

나라 없는 설음

 

1991 3월 혜산에서 태어난 김00씨는 네 살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그녀와 남동생을어렵게 키웠습니다. 성인이 되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남의 돈을 꾸어 마련한 장사물품을 다 잃었다고합니다.

 

그녀는 빈손으로 집에 들어갈 수 없어 2010년 겨울 압록강을 건너게 됩니다. 몸을 녹일 새도 없이, 바로 길림성의 농촌으로 팔려갔고, 13년 차이 남자와 살아야 했습니다. 동네사람들도 북한여성이라고 업신여겼고, 나라 없는 설음은 지옥 그 자체 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탈북하는 길뿐”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한국에 오면 국적을 회복하고 당당히할 말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합니다. 또한 이동의 자유가 있는 곳에서 맘껏 여행도 해보고 싶다고 합니다.

 

 

부모 노릇을 잘 하고 싶어요

 

1986년 청진시 송평구역에서 태어난 황00씨는어려서부터 체력이 안 좋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부모님의 노력으로 간신히 학교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 이후 폭락의 위기에 빠졌다고 합니다.

 

아픈 몸을 치료받는 것은 북한을 떠나는 길 뿐이었고, 2010년 여름 두만강을 건넜다고 합니다. 인신매매 당한 후 집에서는억울해도 말없이 살아야 했고, 밖에서는 북한에서 왔다고 괴롭힘을 당해야 했습니다. 자식도 한 명 낳았으나, 호구가 없기에 학교에 보낼 수 없는 환경이기에탈북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한국에 오면 “국적을 회복하여 권리를찾고, 아이가 원하는 곳에 학교를 보내주고 싶다”고 합니다.

 

 

떳떳한 신분을 회복하고 싶어요

 

1972 1월 평양에서 태어난 김00씨는 아버지를 따라 청진으로 내려왔습니다. 1980년대에 아버지는사고의 책임을 안고 지방으로 추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출신계급이 존재하는 북한에서 추방된 가족으로 산다는것은 꿈도 없고 너무 하찮았습니다.

 

그 후 그녀는 시집을 갔지만 이혼하게 되었고, 4살짜리 애를 업고 1999 5월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강을 건너니 인신매매군은 총으로 위협하며, 아이와생이별 후 팔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시아버지 병간호를 해야 했고, 애가 학교 다니니 방직공장, 식당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뒷바라지를해야 했습니다.

 

열심히 자식을 키웠지만, 이제는 건강도 좋지 않고, 국적도 밝힐 수 없는 환경을 벗어나고자 탈북하게 되었습니다. 나우는 하루 빨리 그녀가 건강을 회복하여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말이 같은 곳에서 당당히 살고 싶어요

 

1969 6,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태어난 현00씨의 사연입니다.

 

그녀는 학교 졸업 후 직장에서 일하다가 결혼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일하기를 싫어했고, 열심히 노력해도 굶어죽는 상황에서 항상 가난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겠다”라는 쪽지를 남긴 후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홀로 아이를 키운다는것은 너무도 힘에 부쳤고, 시집에 맡기고 2000년에 두만강을건넜습니다.

 

동네 동생을 따라, 강을 건넜지만 팔려가는 것 말고는 그녀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그녀의 삶은 항상 숨어 다녀야 했다고 합니다. 경찰 사이랜이 울릴 때마다 소스라쳤고, 상대적으로 단속이 적은 심양으로 어렵게 이동하여 살아야 했습니다.

 

그녀는 “호구도 없이, 언어가 다른 곳에서 살아야 하는 서러움을 벗어나는 길은 탈북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한국에 입국하면 국적을 회복하고 아이를 데려와 부모구실 하고 싶다”고 합니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자입니다.

 

북한인권단체 NAUH(나우)는 후원자님들의 후원으로 319명의 탈북자를 구출하였습니다.

Quick Menu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