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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용을 구하려다 목숨 잃은 아버지

NAUH 2019-03-07 10:14:42 조회수 155

 

 

1990년대 후반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난 이00씨는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몸이 편찮았고 주변인들은 녹용을 먹으면 낫는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수소문 끝에 파는 사람을 알았지만 소량으로 팔지 않는다고 하여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대신 거간비로 얼마간을 구했습니다.

 

할아버지의 병은 차도를 보였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북한에서 산삼이나, 녹용은 김씨일가에게 바쳐야 하는 진상품이 유통된 것을 안 보위부는 수사를 시작했고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 이씨의 아버지에게 혐의를 씌었기 때문입니다.

 

이씨와 가족은 엄동설한에 오지로 추방당했습니다. 그 일로 할아버지는 심화 병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울화병에 위암 걸리셨다고 하는데요. 4년 전 여름 두만강을 건너자 십대의 나이에 8년 연상 한족에게 팔려가 철창의 새처럼 오도 가도 못하고 집에만 있다가 다행히 자유의 길에 올랐습니다.

 

 

 

자식은 떳떳하게 키우고 싶어요

 

1980년대 후반 량강도 혜산시에서 태어난 김00씨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학교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소원이 딸을 공부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신성분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졸업 후 바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고, 이삭줍기며 파고철장사도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는 영양결핍으로 인해 거동을 못하셨고 돈이 필요했습니다. 중국에 가면 쉽게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막상 압록강을 건너니 5년차 정신장애 남성에게 팔려가야 했습니다. 김씨가 남편과 함께 밖에 나오면 동네사람들은 자꾸 놀려 망신스러웠습니다.

 

그 후 그녀는 밖에는 나오지도 않고, 농사짓고 소를 키우다 다행히 나우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에 가면 국적을 회복하고 자식은 떳떳하게 키우기 위해 나왔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라도 꼭 살리고 싶습니다

 

1990년대 초반 량강도에서 태어난 장00씨는 학교를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분 모두 병원생활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녀가 공부도 못하고 병시중만 드는 것에 마음이 아프셨는지 중국에 살길 찾아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모님 약 지을 돈을 모을 생각으로 2010년도 압록강을 건너 탈북했지만 바로 8년차 한족남성에게 팔려가야 했는데요. 시언니는 항상 저를 깔보며 때렸고, 그녀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국적이 없어서 맞아도 항거하지 못했습니다.

 

김씨는 2014년 어렵게 북한에 연락을 했지만 그 해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픔보다도 딸 생각에 정처없이 걷다가 차에 치워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그녀는 이제 남은 가족은 아버지뿐이라며 꼭 모셔오겠다고 말합니다. 나우는 그녀가 아버지를 모시고 행복하게 한 집에서 살 그날을 소망합니다.

 

한 생명을 구한 자는 전 세계를 구한 것입니다.

 

북한인권단체 NAUH(나우)는 현재까지 402명의 탈북자분들을 한국으로 모셔왔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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